가슴 아픈 상처가 있는 소심하고 대인기피증이 있는 류신아는 아이돌로 데뷔했지만, 노력 끝에 연기자로 거듭난 남자 이해서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다. 이해서는 클럽에서 만난 루시아와 똑 닮은 대필작가 류신아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묘하고도 불쾌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류신아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인격, 루시아가 있었는데…….
<본문>
“이해서 씨가 뭐가 아쉬워서 날 만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한 만큼 갚아 줬단 식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서는 말없이 그녀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알고 있을까. 지금 그녀는‘류신아’를‘나’라고 칭하고 있다는 걸. 죽어도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걸 그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건 아닐까.
류신아에게 쌓였을 분노, 불안, 스트레스를 루시아가 방출하고 있었다.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았다. 결코 서로 마주할 수는 없지만, 결코 서로 떨어질 수도 없었다. 류신아와 루시아, 둘 중에 누가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언뜻 보면 루시아가 세상 살기엔 더 편한 성격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녀에겐 현실감이 없었다. 잠깐의 스트레스 방출용으로는 상관없겠지만 그대로 온전히 삶을 다 살아간다는 건 문제가 많았다. 한 사람은 깊은 호수의 밑바닥 같았고, 한 사람은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호수의 밑바닥과 손가락 사이를 흘러버리는 바람을 공존하게 할 수 있을까. 다시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